세상을 바꾸는 희망 풍경

작은 병뚜껑을 모아 지구를 구한다고요?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프로젝트 ‘플라스틱 방앗간’

2,000명 정원의 플라스틱 수거 참여자 신청은 30초 만에 마감되고, 참여 대기 신청자만 4만 4,000명에 이를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환경 운동이 있다. 작은 조각을 모아 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 서울 프로젝트, ‘플라스틱 방앗간’이다.

강은진 사진 김기남, 서울환경연합

식탁에 오르는 플라스틱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평균 21g, 신용카드 한 장 무게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금도 해마다 800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잘게 부숴져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 식탁에 오른다. 환경 파괴는 물론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해결법은 과연 무엇일까? 최대한 사용을 줄이는 거다. 그리고 올바른 분리배출을 통해 최대한 재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분리배출이 보편화한 우리나라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률은 34%에 불과하다. 내가 아무리 올바르고 깨끗하게 플라스틱 폐기물을 분리배출해도 나머지 66%는 매립돼 결국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소각을 통해 미세먼지로 돌아오거나, 바다로 흘러가 다시 식탁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심각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곳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서울환경연합 (이하 서울환경연합)이 운영하는 ‘플라스틱 방앗간’이다.

재활용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방앗간?

플라스틱 방앗간은 사랑의열매와 삼성전자가 함께 하는 ‘나눔과꿈’에 선정된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이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프레셔스 플라스틱은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모아 종류별·색깔별로 분류해 분쇄기로 부순 다음 그 조각을 녹여 가공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재활용 기계 도면이나 재활용 물건의 디자인 노하우 등을 오픈 소스 형태로 무료 공유한다. 플라스틱 방앗간 역시 시민들이 모은 병뚜껑을 치약짜개나 비누 받침대, 열쇠고리 등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 캠페인 참여자들에게 리워드로 돌려준다. 수거한 플라스틱 병뚜껑을 자원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에너지, 인력,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참여 인원은 시즌별 2,000명으로 제한해 진행했다. 택배 수거로 진행한 참새클럽 시즌 1~3의 결과, 총 1만여 명이 참여하고 대기자만 4만 명이 넘을 정도로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현재는 택배 수거를 마감하고 시민이 직접 방문하는 방법으로 변경, 전국의 제로 웨이스트 숍과 협업해 수거 활동을 진행 중이다.

수집한 병뚜껑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리 세척 과정을 거친다.
분쇄한 플라스틱 병뚜껑
분쇄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치약짜개
제품 제작 모습
결국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것

엄격한 수집 가이드를 바탕으로 플라스틱 방앗간은 PP(폴리프로필렌)와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재질의 플라스틱 중에서도 한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플라스틱만 수집한다.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일까. 분리배출할 경우 플라스틱, 종이, 유리 같은 재활용 쓰레기는 한데 모아 선별장으로 가는데, 이때 사람이 일일이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걸러내다 보니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은 사실상 재활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방앗간은 역설적이게도 재활용을 통해 재활용이 쓰레기 문제 해법은 아님을 전한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경고, 시스템의 허점, 기업 변화 등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제품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쿵덕쿵덕, 지구를 구하기 위해 플라스틱 방앗간은 오늘도 부지런히 플라스틱을 빻는다.

병뚜껑은 재활용을 통해
다양한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플라스틱 방앗간의 병뚜껑 수집 가이드

한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자체 재질이 PP라고 표기된 플라스틱

음료 병뚜껑과 병목 고리(대부분 PP, HDPE로 따로 재질 표시가 없어도 됨)

실리콘·고무·비닐 등 다른 재질이 부착된 경우 수집 불가. 병뚜껑 안쪽 확인 필수

스티커, 라벨, 음식물 등 이물질을 깨끗하게 세척하고 제거

재질이 플라스틱 자체가 아닌 라벨에만 적혀 있는 경우 수집 불가

PS, PET, PL A, OTHER(복합 재질) 등은 수집 불가

바깥에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떼어내고, 안쪽에 있는 실리콘이나 종이 등은 분리

색깔별로 분리

음식물 등이 묻어 세척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된 경우 수집 불가

치약, 화장품, 소스, 어린이 음료 병뚜껑 등 자체 재질 확인이 불가 능할 경우 수집 불가

*관련문의 카카오톡 @서울환경연합
pp@kfem.or.kr ppseoul.com/mill
귀여운 열쇠고리
참새클럽 회원들이 모은 병뚜껑
플라스틱 방앗간에는 다양한 제품이 전시돼 있다.
MINI INTERVIEW 서울환경연합 프로젝트 매니저 김자연

“병뚜껑 수집의 진짜 목적은 문제의식의 각성과 공유”

업사이클링 제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힙하다
제품 디자인은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실 환경 운동의 성패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걸 자랑하고 싶어 하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테니까 말이다. 더 자랑하고 싶은 멋진 활동과 세련된 제품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 중이다.

플라스틱 방앗간을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플라스틱 쓰레기뿐 아니라 낭비하는 자원 문제는 기후 위기와 직결된다. 이런 환경문제는 ‘나 하나의 실천으로 뭐가 변할까?’ 하는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데, 이럴 때 많은 사람이 함께 힘을 모으면 분명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시작했다.

나눔과꿈 사업 지원을 통해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지원을 받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이 일을 했겠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더뎠을 테고 지금처럼 멋진 제품 생산도 어려웠을 거다. 재활용 플라스틱은 탁해서 색을 내는 게 어렵다. 만약 그저 그런 촌스러운 제품이었다면 현재 플라스틱 방앗간 참새클럽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MZ세대 여성분들이 지금처럼 참여했을까 싶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다.
결국 예산 문제다. 우리는 그 어떤 수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서울환경연합이라는 곳도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비영리 환경 단체다. 공모 사업을 통한 지원을 제외하면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병뚜껑을 수집하는 일 말고도 수많은 교육 요청부터 캠페인, 다양한 콘텐츠 개발 등 많은 과업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뚜껑 수거에 참여한 시민들의 변화가 궁금하다.
초기에는 택배로 병뚜껑을 수거했다. 박스를 열어보면 병뚜껑이 많을수록 “덜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편지나 쪽지가 들어 있곤 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병뚜껑을 많이 모아 재활용하자는 게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이 쓰레기가 얼마나 우리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지 깨닫자는 거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변화를 통해 사회적 변화뿐 아니라 제도적 변화까지 이끌어내고자 한다. 병뚜껑 수거는 유의미한 환경 활동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