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마디

지독한 가난 딛고 나눔의 대부(代父)가 되기까지… (주)스타테크 박원균 회장 “어머니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돈이 없어 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아들은 첫 월급으로 엄마 옷부터 샀다. 그 옷을 받아 든 엄마는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홀로 남은 아들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주)스타테크 박원균 회장이다.

강은진 사진 박충렬

여수 나눔 이끄는 입지전적 인물

(주)스타테크 박원균 회장은 여수 지역사회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전남 사랑의열매 93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임은 물론, ‘재단법인 진남장학회’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후원하고, 매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등 끝없는 선행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수 YMCA 이사장으로, 청소년 후원 단체 ‘국제와이즈멘 여수진남클럽’ 회원으로 지역사회 나눔 활동에 헌신해왔다. 거기다 열여섯 살 소년공으로 시작해 (주)스타테크 회장까지 오른, 사업의 성공 신화를 새로 쓴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박원균 회장 뒤에는 큰 아픔과 숱한 고생, 그리고 많은 고비가 숨어 있었다. 일단 그의 이야기는 지독한 가난에서 시작한다.
“고향이 이곳 여수가 아니고 고흥인데요, 정말 가난했어요. 집에 농사지을 땅 한 뼘이 없었으니까요. 시골에서 농사지을 내 땅이 없다는 건… 남의 집 일도 농사 철뿐이지, 겨울이면 굶는 거예요. 초등학교 교실 칠판엔 육성회비 못 낸 제 이름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곤 했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2남 1녀 중 막내인 박원균 회장은 유난히 속 깊은 아들이었다. 형의 육성회비를 빌리러 아침부터 남의 집에 가는 엄마가 안쓰러워 단 한 번도 먼저 육성회비를 달라고 해본 적이 없다. 학교 앞에서 파는 과자 한 봉지가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사달라기는커녕 아예 과자를 보지 않으려고 뒷문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학교 다닐 형편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상경을 했죠. 무작정 말이에요.(웃음) 그래도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선박 엔진 공장에 취직하고,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었지요.”
박원균 회장은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첫 월급을 손에 쥐었을 때 고향에 보낼 어머니 옷부터 사러 갔다.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그가 산 어머니의 옷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어머니 옷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의 옷까지 사서 고향으로 보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산 옷은 한 번도 입어보시지 못하고요. 옷은 제가 어머니 관에 넣어드렸습니다.”
애틋한 막내아들을 서울로 보내고 괴로워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소포에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큰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박원균 회장은 어머니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원균 회장은 여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나눔 활동으로 명성이 높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

박원균 회장은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을 나눔의 삶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늘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어머니가 기뻐하실까만을 고민했다. 그 답이 바로 나눔이었다.
“서울 본사에서 일하다가 여수 대리점이 생기면서 스무 살 무렵에 내려왔어요. 그때 뭔가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간 곳이 와이즈멘이라는 봉사 클럽이었어요. 기부는 생각지도 못했고, 봉사로 나눔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봉사 활동과 직장 일을 병행하던 박원균 회장의 여수 생활도 파란만장했다. 열심히 근무해 공장장까지 승진했지만 회사가 부도났다.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1994년 부도난 회사를 인수하고, 그 이후 2004년 주삼동에 위치한 지금의 공장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부채를 갚은 다음 주식회사로 변경해 직원들에게 주식까지 나누어주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엔 자신이 가진 건 오로지 기술과 신용뿐이었다고 말했다.

나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일찍이 봉사 활동을 시작한 박원균 회장은 사랑의열매는 물론 아너 소사이어티까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부는 남몰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너 관련 기사나 방송을 보면 돈 자랑하는 줄만 알았다며 웃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너 다큐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명예로운 이름인 거예요. 그런데 공장을 운영하면서 1억을 모은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1억 원을 들고 사랑의열매에 가서야 분할 납부 약정 기부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박원균 회장은 자신에게 고등학교 교복을 후원받은 학생들에게서 감사 문자를 받았을 때를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제 소원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어보는 건데, 아이들은 그저 돈 자랑으로 오해할까 봐…. 직접 만나 밥 한 끼 먹으면서 제가 살아온 얘기와 함께 그 교복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응원했죠. 명함 한 장 주지 않았는데, 나중에 제 연락처를 수소문해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큰 공부가 됐다며 저를 본받겠다고요. 정말 뭉클했습니다.”
박원균 회장은 ‘나눔은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 마음으로 주위를 살피면 나눌 것이 잘 보인다면서 말이다. 오늘도 박원균 회장은 주위를 살핀다. 더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순간을 착하게 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명예로운 아너 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고,
국민훈장 모란장까지 수상하는 영광으로 이어졌죠.
이만하면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기뻐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