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김은숙 대표가 ‘2020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포장과 함께 제32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까지 수상했다.
평생 팥죽을 팔며 50여 년간 총 12억 원을 기부해온 그녀다. 그래서일까, 김은숙 대표의 팥죽 한 그릇에는 더없이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 강은진 사진 서범세
종로구 삼청동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단층 벽돌집이 보인다. 바로 김은숙 대표의 가게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다. 1976년 4월, 처음 문을 열어 5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팥죽을 팔아왔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다 아는 유명한 집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됐을 정도다. 하지만 진짜 유명한 건 평생 팥죽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사실이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김은숙 대표는 사랑의열매를 비롯해 여러 기관에 크고 작은 기부를 해왔다. 남편이 유산으로 남긴 아파트 매각 대금 약 9억 원까지 더해 김은숙 대표의 누적 기부금은 총 12억 원에 달한다. 그래서 팥죽을 둘째로 잘한다고 말하나 보다. 이런 그의 삶은 2020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포장,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 우정선행상, 제32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의 영예로 이어졌다.
“이번엔 감회가 남달랐어요. 학교 다니면서 개근상, 우등상은 받아봤지만 이런 큰 상을 받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살아서 한 번쯤 이렇게 인정받으니… 내가 그래도 헛살진 않았구나 싶더라고요.”
이번에 큰 상을 받은 감회는 남다르더군요.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살아 한 번쯤 이렇게 인정받으니…
그래도 내가 헛살진 않았구나 싶더라고요.
김은숙 대표는 스스로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 했다. 남편 월급만 가지고는 생활하기 빠듯해 하숙도 치면서 생활비를 벌곤 했다. 그러다 이발소가 있던 지금의 건물을 사서 가게를 낸 것. 처음엔 온 가족이 가게 안쪽에 있는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전셋집을 얻어 나갈 때까지 여기서 17년을 살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단팥죽을 만들까 궁리하면서 장사하느라 고생이란 생각도 안 들었지요.”
김은숙 대표는 그의 나이 아홉 살에 엄마 손을 잡고 38선을 넘어왔다면서, 그런 어려웠던 삶이 처절할 정도로 동물적인 생존력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고3 무렵 정신장애를 앓기 시작한 딸을 돌보면서였다.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어떤 걸로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체적인 계기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요. 그냥 마음이 그렇게 변했어요.”
슬하에 남매를 둔 김은숙 대표는 몇 년 전 아들에게 가게 명의를 이전하며 일선에선 한발 물러났다.
“명의 이전을 결심하는 데까지 몇 년이 걸렸어요. 은퇴하면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 너무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넘기고 나니, 왜 그동안 자유롭게 살지 않고 가게만 붙들고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이젠 조금씩 돕는 가게 일도 힘이 드네요.(웃음)”
그나저나 1976년 4월, 많고 많은 장사 중에 왜 팥죽이었을까? 이야기 말미가 되어서야 궁금해졌다. 김은숙 대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팥죽이라며 웃는다. 피란길에 먹은 단팥죽 한 그릇의 맛이 지금까지 여전히 자신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면서 말이다.
“나눔은 당연한 거예요. 나누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다 끌어안고 갈 수 없는데, 가지고 있어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우리 딸 병원 다니고, 현상 유지만 하면 충분해요.”
나눔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김은숙 대표는 여전히 자신이 그렇게 많은 기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나 사람이 기부를 안 하면 자신이 상을 받았을까 싶단다. 김은숙 대표의 새해 소망은 이웃들을 직접 찾아가 돌보는 것이다. 그의 팥죽 이야기, 어째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