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리더들

기다리는 이웃이 있어 행복한 사람,
유은영 기부자
골목마다 온기를 전한
30년의 도시락 배달

누군가를 위해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일이 30년 가까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봉사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된다. 울산 신정1동에서 오랫동안 어려운 이웃을 돌봐온 유은영 기부자의 이야기다. 오래전 부녀회 활동으로 시작한 이웃 돌봄은 홀몸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배달로 이어졌고, 이제는 명절마다 이웃에게 온정을 전하는 기부로 확장됐다. 그에게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글 강보라     사진 서범세

도시락 한 끼로 시작해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온 유은영 기부자
매일 아침 도시락을 기다리던 사람들
유은영 기부자가 봉사 활동에 발을 들인 것은 둘째 아이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이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부녀회 활동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다가, 이후 홀몸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배달을 맡으면서 봉사는 일상이 됐다.
울산의 오래된 주거지역인 신정1동에는 형편이 어려운 홀몸 어르신이 많았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만 원을 내며 낡은 집에 사는 어르신도 있었다. 평일 아침마다 도시락 24개를 차에 싣고 신정1동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도시락을 건네며 설거지를 거들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폈다.
그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할머니가 있다. 배달을 갈 때마다 집 앞에 의자를 놓아 주차 자리를 맡아주던 분이었다. 어느 날, 의자가 보이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다 얼마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돌아가신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집으로 차를 몰고 있더라고요. ‘아, 내가 왜 또 여기 왔지’ 싶으면서 가슴이 참 아팠죠.”
도시락 배달은 끼니를 넘어 안부를 확인하고 정을 쌓는 시간이었다. 10여 년 전 신정2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신정1동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고, 한때 두 지역을 오가며 하루 30개가량의 도시락을 배달했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건네며 이웃의 안부까지 살뜰히 챙긴다.
아버지에게 배운 나눔의 가치
그에게는 잊지 못할 아버지의 한마디가 있다. 교사이던 아버지는 40년 전, 물려받은 고향 거창의 땅을 가족 몰래 기부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서운함을 토로했고, 자식들 역시 아버지의 선택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아쉬워하자 아버지는 되레 이렇게 물었다.
“느그들 밥 굶고 사나? 밥 먹고 살면 그만이지.”
당시에는 야속하게만 들렸던 말이다. 하지만 도시락 한 끼가 절실한 어르신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가진 것을 모두 움켜쥐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의 나눔을 이해하지 못하던 딸은 어느덧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올해 설과 추석 때 신정1동과 신정2동에 각각 100만 원씩, 총 400만 원을 기탁한 것이다. 명절이면 후원 담당자를 헤아려 먼저 성금을 전한다. 신정1동 복지팀 김아영 팀장은 “언제나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후원해주시는 분”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웃을 위한 씀씀이와 달리 자신에게는 더없이 검소하다. 얼마 전에는 낡은 속옷을 꿰매 입다가 문득 ‘남에게는 기부하면서 정작 내 것은 왜 이렇게 아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소비보다 나눔의 기쁨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저도 사람인데 좋은 걸 갖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은 한순간이고, 나누고 나면 그 기쁨이 계속 남잖아요.” 함께 봉사하는 이들에게도 친언니처럼 마음을 나누는 유은영 기부자. 아버지가 남긴 것은 재산보다 값진 삶의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을 따라 30년 가까이 전해온 것은 도시락 한 끼를 넘어 이웃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우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