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프론티어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의
발달장애 청소년 그림책 제작·확산 프로젝트
“저의 다음 그림책도
기다려주세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된다. 발달장애 청소년의 꿈과 경험에 이웃의 재능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탄생한다. 사랑의열매 지원으로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이 함께 만드는 변화, ‘꿈꾸는 그림책’ 사업이다.

글 강은진     사진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

그림책으로 서로의 꿈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애이해교육 참여자들. 발달장애 청소년의 이야기가 이웃을 만나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발달장애 청소년에게도 저마다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할 기회는 별로 없다. 장애에 관한 설명에서도 개인의 취향과 경험보다 장애의 특성과 어려움이 먼저 부각되곤 한다. 누군가의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이야기로 한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까?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의 ‘발달장애 청소년의 완전한 참여를 통한 주체성 강화 및 지역 주민 중심의 장애이해 콘텐츠 제작·확산 프로젝트 「꿈꾸는 그림책」’(이하 꿈꾸는 그림책 사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한다. 발달장애 청소년의 꿈과 경험 및 상상을 그림책에 담고, 이를 지역사회에 전해 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사업이다. 2023년 서울 사랑의열매 지원으로 시작해 시즌 2까지 진행됐다. 사업을 이끄는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장애인 특화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이 운영하는 기관이다. 사람과 지역사회를 중심에 두고 장애인이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꿈꾸는 그림책 사업 역시 발달장애 청소년을 각자 개성과 꿈을 가진 동료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나는 데서 출발했다.
함께 쓰고 마을로 펼치다
꿈꾸는 그림책 사업에서는 발달장애 청소년과 그림책 전문가,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룬다. 발달장애 청소년이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로 이야기를 제안하면 전문가는 이를 그림책으로 풀어내도록 돕고, 대학생은 일러스트와 편집으로 구현한다. 사회복지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와 환경을 조율한다. 기존 강사 중심의 프로그램과 달리 각자의 경험과 재능을 모아 결과물을 만드는 공동 생산 방식이다.
발달장애 청소년과 그림책 전문가, 미술대학생, 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각자의 경험과 재능으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완성해간다.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누구 한 사람에게 결정권이 집중되지 않도록 협업 구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서로를 동료로 만날 수 있도록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호칭 대신 필명을 쓴다. 그림책을 만들기에 앞서 일상과 관심사를 나누며 가까워지는 시간도 갖는다. 이후 함께 주제를 고르고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간다. 발달장애 청소년은 책을 만드는 작가로 참여해 비슷한 세대인 대학생과 관심사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완성한 그림책은 종이책으로 출판해 독자를 만난다.
책이 나오면 또 다른 주민들의 재능이 더해진다. 완성된 그림책을 본 주민이 오디오모션 북 제작을 제안하면서 주민 모임이 시작됐다. 시즌 2에는 영상팀과 장애이해교육팀으로 활동이 넓어졌다. 영상팀은 성우 섭외부터 녹음까지 논의하며 그림책을 소리와 움직임이 있는 영상으로 옮겼다. 교육팀은 활동형 장애이해교육을 기획해 당사자 작가와 함께 관악구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을 찾았다. 그림책은 발달장애 청소년의 이야기를 더 많은 이웃에게 전하는 매개가 된 것이다.
그림책에 목소리와 움직임을 더하는 오디오모션 북 제작 과정. 주민들의 재능이 모여 발달장애 청소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책 밖으로 이어지는 변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발달장애 청소년은 지역사회에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된다. 함께한 주민들도 각자의 재능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을 이끄는 활동가로 역할을 넓힌다. 독자에게는 장애라는 이름에 가려진 한 사람의 꿈과 고민을 만나는 기회가 열린다.
2023년 시작한 꿈꾸는 그림책 사업은 시즌 2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2년간 그림책 제작 모임에 21명, 장애·비장애 주민 모임에 30명이 참여해 그림책 7권과 오디오모션 북 4편을 완성했다. 완성된 그림책 121권은 관악구 내 도서관과 서울시 내 유관 기관·교육기관 21개소에 보급됐다. 주민들은 당사자 작가와 함께 그림책을 활용한 장애이해교육을 진행해 44회에 걸쳐 884명을 만났다.
어린이집에서 그림책을 활용해 장애이해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당사자 작가가 작품을 직접 소개하는 북 콘서트도 열었다. 변화는 숫자 너머에도 있다. 주로 SNS로 소통하던 발달장애 청소년 은별 씨(가명)는 출판기념회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며 자신의 책을 소개했다. 이후에는 그 그림책을 활용해 장애이해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주민들도 그림책 속 인물이 자신과 비슷한 꿈과 고민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됐다는 반응을 전했다.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앞으로 완성된 그림책과 오디오모션 북을 활용해 장애이해교육을 이어가며,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를 전하고, 주민들이 함께 그 목소리를 퍼뜨리는 일이다. 더 많은 동네에서 이 책이 펼쳐지고, 책장을 넘긴 이웃이 작가를 만나 그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할 수 있도록.
“그림책 만들며 스스로의
가능성 발견해”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 고유정 팀장
Q꿈꾸는 그림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21년에도 발달장애 청소년의 아이디어로 그림책을 만들었지만, 최종 결과물은 대학생과 사회복지사가 결정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때 청소년들이 이야기의 방향을 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민이 발달장애 청소년의 참여를 더욱 넓힌 꿈꾸는 그림책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Q사업 초기, 기대와 우려 등 여러 반응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이 과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라며 걱정하거나, 아예 참여를 취소한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청소년을 만나보니 말로, 그림으로, 휴대전화 속 사진으로 저마다의 생각을 표현하더라고요. “그림책을 잘 만들고 싶어서 다른 사람 이야기도 잘 들으려고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역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며 다음 그림책을 기대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요.
Q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문장과 그림은 물론, 글꼴과 크기까지 함께 정하다 보니 의견이 부딪칠 때도 있었어요. 누군가 대신 결정하지 않고, 모두가 이해하고 납득할 방법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림과 사진, 쉬운 회의록, 대답 버튼 등을 활용하며 각자의 속도에 맞춰 의견을 나눴어요. 그 과정에서 책을 빨리 완성하는 것보다 서로의 생각을 듣고, 함께 결정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Q특별히 기억에 남는 참여자와 그림책이 궁금합니다.
기관사를 꿈꾸는 하랑 씨의 <하랑 박사님, 어디 가세요?>가 떠올라요. 팀원들과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다녀온 경험을 담았고, 직접 녹음한 안내 방송 음성도 넣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하랑 씨는 주 5회 센터에 다니기보다 꿈을 위한 활동을 더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센터 이용을 줄이고 원하는 활동을 늘리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기관사를 꿈꾸는 하랑 씨는 팀원들과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경험을 <하랑 박사님, 어디 가세요?>에 담았다.
Q사랑의열매 지원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참여자들이 충분히 만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림책 제작비뿐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 맺을 환경을 만드는 데도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자부담만으로 충당했다면 사업을 이어가고 넓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사랑의열매 덕분에 청소년과 주민들이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며 함께하는 경험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