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마디

충남 청양 패밀리 아너 된 신기산업
신정용 회장·김동복 대표, 신기농장 신기민 대표
“어려운 시절 받은 도움을 가슴에
새기고 나눔을 실천합니다”

지난해 11월 신기농장 신기민 대표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을 때 주변에선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것도 새신랑이 거액 기부를 약속한 것을 두고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충남 청양군 일대에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기부 인사’인 신기산업 신정용 회장·김동복 대표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선희 사진 서범세

결혼 한 달 만에 거액 기부한 진짜 이유

신기민 대표는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아내인 김청미 씨에게 “함께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넌지시 기부 의사를 비쳤다. 아직 둘 다 젊고, 한창 일할 때이며 다행히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저렴한 가격에 전셋집까지 구했으니 이제 조금씩 나눔을 실천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 것. 한번 품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 대표는 기왕 할 거라면 크게 해보고 싶다며 아내에게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의사를 밝혔다. “아내가 동의해주지 않았으면 할 수 없었겠죠. 공무원인 아내와 달리 저는 축사를 운영해서 수입 폭이 크거든요. 5년 약정 기부니까 그동안 내가 좀 덜 자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힘을 북돋아주더라고요. 마음을 알아줘서 정말 고마웠죠.”
코로나19 여파로 가지 못한 신혼여행 비용과 축의금을 기부하며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신 대표의 아너 가입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아버지 신정용 회장, 어머니 김동복 대표와 함께 아너에 이름을 올리며 청양군 패밀리 아너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너 가입식에 동석한 부모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그는 알았다. 아너에 가입해야 한 진짜 이유를 말이다.
“나눔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표정이 너무 좋으신 거예요. 사실 얼마가 됐든 갖고 있으면 모두 재산인데, 이웃을 위해 선뜻 큰돈을 내놓고 행복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알았죠. 돈은 저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요.”

우리 생각이 난다며 중고차를 그냥 준 지인도 있었고요. 소리도 없이 사무실 앞에 쌀, 고구마, 기름장 등 먹을거리를
놓고 가는 마을 주민도 있었지요. 어려운 시절을 지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이 정말 많아요. 살면서 다 갚아야죠.
우리 집 가훈이 ‘도와준 것은 잊고, 도움을 받은 것은 가슴에 새겨라’예요. - 신정용 회장

가슴에 새긴 고마운 기억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신정용 회장이 충남 예산에서 비료 공장을 운영할 때였다. 신 회장은 지역에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장애인을 채용했고, 사비를 들여 그들의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한 장애인 단체와 연을 맺었다. 훗날 이 인연으로 큰 고비를 넘길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부도가 나서 빚만 37억 원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했는데 옛 동료와 장애인 단체 직원이 선뜻 빚보증을 서줬어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지금 이 부지로 공장을 옮기려 할 때는 마을에서 반대를 했는데, 그때도 장애인분들이 큰 도움을 주셔서 이렇게 옮길 수 있었죠. 그분들이 저희를 살리신 거예요.” (김동복 대표)
당시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부가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얻은 귀한 기회인 만큼 두 사람은 공장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신 회장은 생산 라인을 지키고, 김 대표는 직원들 밥을 챙기면서 경리 일을 하는 등 두 사람은 성실하게 일한 끝에 2012년, 마침내 모든 빚을 갚았다.
힘이 되어준 지인들에게는 이미 차고 넘치게 갚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또렷하게 새겨진 그때의 감사한 마음은 이제 주변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신 회장 부부는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쓰릴 만큼 힘든 시기를 겪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수확이 끝난 배추밭에서 이파리를 주웠다가 도둑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일, 어물전에서 버려진 생선 대가리를 강아지한테 먹일 거라면서 받아 온 일도 있었다. 아들 신기민 대표의 머릿속에도 가난을 이겨내려고 고생하던 부모님 모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수재민·이재민 돕기 성금을 내라고 하는데 부모님께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주셨어요. 친구들은 동전 몇 개, 1,000원짜리 한 장을 내는데 저만 수표를 가져와서 담임선생님께서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시더라고요.”
어린 마음엔 그 수표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빠듯한 형편에도 제법 큰돈을 기부금으로 내놓는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안 것은 조금 더 커서 일이다. 신 회장 부부의 나눔은 종종 소년소녀 가장의 생활비, 수중에 현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어르신의 병원비,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의 수술비로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가훈대로 도움을 준 것은 잊고 살았다. 2017년 충남 아너 모임에서 임경순 아너를 만났을 때도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10여 년 전 임경순 아너는 사랑의열매로부터 ‘신기산업’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긴 기부금을 전달받아 막내아들의 심장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임경순 아너) 그분이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아산에서 유명한 음식점 대표로 성공한 것은 물론, 주변에 나눔을 많이 하시는 걸로 유명하더라고요. ‘나눔은 내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서 보람을 느꼈죠.” (김동복 대표)
이들은 이웃을 돕는 것 외에도 나눔이 이어지도록 주변에 기부 방법을 소개하는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신정용 회장은 “며느리, 딸, 사위까지 모두 아너에 가입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온 가족이 아너가 되면 <사랑의열매>에 다시 나오고 싶다며 우스개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머지않아 다시 한번 신 회장 일가를 지면에 소개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때는 ‘청양군 최초 가족 구성원 모두 아너 가입한 나눔명문가 탄생’이라는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