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마술사이자 사랑의열매 홍보대사 최현우가 <사랑의열매> 10월호 표지 모델로 나서며 눈부신 가을의 나눔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특히 올해는 그에게 더욱 특별한 해다. 마술사로 무대에 선 지 어느덧 30년, 그 긴 시간을 기념하는 대규모 공연으로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실험을 가득 담은 ‘FaTe’와 30년 마술 인생을 집약한 ‘Legacy’, 서로 다른 매력의 두 무대를 준비한 그는 지난여름 ‘FaTe’를 성공적으로 마친 데 이어 오는 11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Legacy’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만큼 준비한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좀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 막 등장한 신인 마술사라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만큼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 외모에 현장이 술렁였을 정도다. 이쯤 되면 마술보다 마술사의 세월이 더 미스터리다.
“사실 저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서른이 됐다고, 마흔이나 쉰이 됐다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가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를 맡은 지 벌써 12년이나 됐다는 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언제 그렇게 오래됐죠?(웃음) 사랑의열매와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참 마법 같은 일처럼 느껴집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마술 도구에 흥미를 느끼며 마술에 빠져든 그는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그리고 2009년 아시아 최초로 Most Originality Award를 수상하고, 2012년에는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 무대에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마술이 대중 예술로 당당히 자리 잡고, 오늘날 수많은 청소년이 장래 희망으로 ‘마술사’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 데에도 그의 존재를 빼놓기 어렵다. 팬들이 그를 ‘대마법사’라 부르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이력이다. 이쯤 되면 지난 30년의 영광을 하나씩 꺼내놓을 법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는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며 예상 밖의 답을 내놓았다.
찬양은 하루만 즐겨라, 스승의 가르침
나눔이야말로 진짜 기적이기에 10년 넘도록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고 말하는 마술사 최현우
최현우의 30년 마술 인생에는 역사적 장면이 적지 않다. 특히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선보인 마술 공연은 정치적 의미를 떠나 세계 마술계에서도 길이 남을 장면으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최현우는 먼저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20대에 만난 일본인 스승 미스터 마릭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TV 마술사로 살다 보면 많은 부침이 있을 테고 찬양받는 날도 있겠지만, 그 기분은 딱 하루만 즐기고 다음 날에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라고요. 영광에 오래 취해 있으면 결국 ‘내가 옛날엔 이랬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된다면서요. 저는 그 말씀을 지금까지 깊이 새기고 있어요. 선생님은 저희 어머니와 동갑이신데, 지금도 일본에서 투어를 하며 활동하고 계세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는 태도는 그의 조금은 특별한 인생관과도 맞닿아 있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놀랍게도 ‘인생은 원래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냉소나 비관과는 달랐다. 삶에는 본래 고단한 시간이 있다고 받아들이면 그 사이사이 찾아오는 작은 행복이 오히려 크게 다가온다면서 말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관객분들이 보내주시는 1분 정도의 기립박수, 정말 행복하죠.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저는 몇 년 동안 공연을 만들고,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연습해요. 잘될까, 실패하면 어떡할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잘 안되면 연습하면 되고, 잘되면 좋은 거고, 만약 안되면 다시 하면 됩니다. 저는 그런 단순함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30년이라는 숫자 앞에서도 그는 좀처럼 감상에 젖지 않았다. 어제의 박수보다 오늘의 무대가, 그리고 지나온 30년보다 아직 만들어야 할 다음 마술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도 분명히 있어요.
그럴 때 사회가 도와줘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랑의열매가
진짜 마법 같은 기관 같아요!”
마술 넘어 진짜 마법은 나눔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로 함께한 12년. 각종 캠페인과 홍보 활동에 참여하고, 포스터와 영상 촬영 등 재능 기부도 아끼지 않았던 최현우에게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오래전 사랑의열매 행사에서 자신의 마술을 보았던 한 아이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마술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그를 찾아온 것이다.
“사실 저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인데, 저를 찾아와 자신도 취직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인사하는 게 아니겠어요? 오히려 제가 더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러면서 ‘아, 12년이란 세월이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구나’ 새삼 와닿기도 했고요.”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최현우는 자신이 가장 경계하는 말 중 하나가 ‘선한 영향력’이라고 했다. 좋은 일을 했다고 내세우거나, 자신의 기부를 크게 알리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는단다. 그에게 나눔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30년을 달려온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청년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고 매일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무대의 화려함보다 힘든 시간이 훨씬 많을 수 있고, 좋아하는 순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견뎌야 할 때도 많죠. 그러니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직업은 다 힘드니까요.”
내친김에 뻔한 감동 서사 하나쯤 끌어내볼 요량으로 슬럼프 극복법을 물었다. 그러자 우리의 대마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출을 많이 받으면 돼요”라고 답했다.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고, 공연장은 이미 빌렸으니 슬럼프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감동적인 성공담으로 포장할 만하면 툭 걷어내고, 근사한 위로를 기대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군더더기 없는 말들이 어설픈 위로보다 더 위로가 됐다. 어쩌면 이것도 최현우가 부리는 매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