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마디

“이웃 돕는 착한 오지랖이
세종맘카페의 시작이었죠”

맘카페는 지역 커뮤니티의 대표로 꼽힌다. 현지인의 알짜배기 정보부터 임신, 육아, 출산, 교육 등 아이를 키우며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해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맘카페는 여기에 ‘나눔’이라는 특별함을 더해 눈길을 끈다.

강보라 사진 서범세

세종시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모인 세종맘카페(세종맘들의 행복한 이야기방)는 대표적 지역 커뮤니티로 22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세종맘카페를 이끄는 정연숙 대표(닉네임: 파란나라)는 ‘착한 오지랖’으로 정평이 난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곤경에 처한 사람, 배고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밥상을 펴고 보따리를 푸는 스타일이다. 세종맘카페 회원들과 세종시 나눔리더스클럽 2호로 가입하며 공동 기부를 이어가던 정연숙 대표는 체계적인 나눔을 위해 세종 아너 31호로 가입했다. 2024년 새해 첫 아너 회원으로 청룡의 해를 의미 있게 시작한 것이다.

생활 정보로 가득한 우리 동네 사랑방

정연숙 대표는 세종맘카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우울증 극복이었다고 말한다.
“신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전에서 이사 왔는데 사람도 없고 슈퍼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웃음) 논밭 사이에 아파트만 우뚝 선 셈이었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 맞이한 겨울방학은 가혹했다. 정연숙 대표는 당시 초등학생 아들 둘을 집에 두고 출퇴근하며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집 주변이 모두 공사 중이라 아이들에게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서곤 했죠.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 무렵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 불빛을 보고 ‘저 집에는 누가 살까? 저 집에 사는 아기 엄마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그렇게 우울증이 서서히 고개를 들 무렵 남편이 지역 맘카페 개설을 권유했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먼저 사람을 모으고 교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2012년 2월, 이사 온 지 두 달 만에 세종맘카페를 개설했다. 이후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종의 모습을 전하는 열혈 취재원으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여기 공원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이렇게 변하고 있어요’ 하며 일반적인 글을 올렸죠. 그랬더니 예비 입주자 엄마들이 ‘6개월 뒤에 입주할 예정인데, 아파트 동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그 주변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댓글을 단 거예요. 사람들이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요.(웃음)”
그 뒤로 댓글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주말마다 자전거 바구니에 카메라를 싣고 세종 곳곳을 누볐다. 부탁대로 신축 아파트 29층에 올라 주변 모습을 담고, 공사 진척 상황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연숙 대표에게 도움을 받은 엄마들이 카페 회원으로 가입하고, 먼저 도움받은 엄마들이 다른 엄마에게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형식으로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 세종맘카페는 그렇게 지역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착한 오지랖을 바탕으로 성장한 세종맘카페

정연숙 대표는 세종맘들이 단순 친목을 넘어 지역 나눔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를 위해 3년 내 1,000만 원을 기부하는 모임 단체인 나눔리더스클럽 세종 2호로 가입을 마쳤다. 정연숙 대표가 세종맘카페의 이름으로 시행한 첫 번째 기부는 플리 마켓 수익금이었다.
“외지에서 이전한 사람들로 구성된 신도시니까 지역 행사가 없었죠. 인근 대전맘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물품이나 아이들 육아용품을 플리 마켓에서 교류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며 의견을 모으고 행사를 진행하게 됐어요.”
세종맘들이 가지고 나온 물품에 기부받은 헌 옷을 손질해 판매했다. 행사답게 커다란 솥을 빌려 어묵 국물을 만들고, 솜씨를 발휘해 다양한 먹거리도 준비했다.
“장사가 처음이라 어묵 국물 만들 때도 식재료를 아낌없이 넣었어요. 꽃게, 다시마, 무, 고추… 모두 국산으로요.(웃음) 이윤을 남기겠다는 마인드보다 맛있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열심이었죠. 얼마나 맛있었는지 진하고 시원한 어묵 국물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플리 마켓을 성공적으로 마친 정연숙 대표는 수익금 68만 원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돈이니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당시 지역에서 화재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 생겨 그들의 화상 치료비에 보탰죠.” 정연숙 대표의 착한 오지랖은 지역에도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세종맘카페에 ‘어울림시장’이라는 코너를 별도 개설해 농산물과 가공품,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여 농민과 소상공인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선 것이다. 특히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하는 김장 김치와 쌀은 1사 1촌 협약을 맺은 마을의 농산물을 활용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연숙 대표의 착한 오지랖이 지역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세종시 아이들을 품다

정연숙 대표의 선한 영향력은 ‘철조망 사고’로 불리는 안타까운 사연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2017년,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학생이 음식물 수거 차량에 걸려 있던 군부대 철조망에 휘감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전거에서 넘어진 A 군(당시 15세) 몸에 철조망이 감긴 채로 수 미터를 끌려가며 배와 다리는 물론 일반 장기까지 손상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정연숙 대표는 학생을 돕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고 경위를 듣는데 충격적이라 손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마침 다음 날이 세종맘카페 바자회 날이라 카페에 학생을 돕자는 글을 올리며 철조망 사고 모금 운동을 시작했죠.”
안타까운 사연에 A 군을 돕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고, 정연숙 대표가 운영하는 세종맘카페가 앞장서 3,5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했다. 이후 세종시 학부모회와 지역 주민에게도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정연숙 대표는 지금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그녀의 철학은 두 아들인 안은석, 안동권 군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직접 해결할 수 없으면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줘야 한다고요. 시민들의 이런 마음이 모여야 아이들을 안심하며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거 아닐까요?”

정연숙 대표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나눔 DNA를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꼽는다.
생활 속에서 배우고 익힌 나눔이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며 등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회계 관리가 공동 나눔의 원동력

정연숙 대표가 회원들과 나눔 활동을 진행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투명한 회계 관리다.
“철조망 사고 모금 운동을 할 때 제 개인 계좌를 사용했는데, 계좌에 있던 돈을 0원으로 만들고 시작했어요. 모금이 종료된 상태에서는 0원부터 마지막 입금자까지 모두 캡처해 공개했죠. 모금이나 행사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투명한 회계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나눔과 투명한 회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연숙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사랑의열매였다. ‘철조망 사고’ 피해 학생 모금액 전달도 사랑의열매를 통했다. 모금액 전달부터 치료비, 교육비 등 오랜 시간 전문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세종 사랑의열매는 ‘공동의 수익은 사회로 환원한다’는 정연숙 대표의 철칙을 돕기 위해 체계적인 제안과 밀착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나눔은 마음 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 같아요. 길 가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방한복 수십 벌을 사서 나눠주기도 하고, 교복을 마련하기 힘들 만큼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의 사연을 듣고 스무 명의 아이에게 교복을 맞춰준 적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나눔 로드맵을 함께 그릴 수 있는 전문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나눔을 위해 세종 아너 31호로 가입하며 청룡의 해를 시작한 정연숙 대표는 세종맘카페 회원들을 떠올린다.
“아너 회원 가입 기사를 보고 축하 인사를 전하며 ‘아직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 하고 놀라는 오랜 회원들의 연락 덕분에 일에 열심이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죠. 그 덕분에 ‘잘 살아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연숙 대표는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다는 불가 용어인 ‘시절 인연’을 떠올린다. 수많은 시절 인연이 있었기에 큰 행사들도 서슴없이 진행했으리라. 그래서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날이다. 정연숙 대표의 선행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