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마디

“동생 기리며 무료 호스피스
건립합니다”

한 미혼모 아이의 심장병 수술비 후원자를 급하게 찾는 병원의 전화, 수화기를 드는 순간 그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직 나눔으로 많은 이를 보듬어온 김성주 기부자다.

강은진 사진 이승재

검소한 기부자님의 큰 나눔

김성주 기부자를 만나러 가며 적잖이 긴장했다.
기부의 대가로 2019년 ‘국민포장’까지 받은 유명한 분이기 때문이다. 만남 역시 10억 원 이상 기부하는 성장형 아너 소사이어티 ‘오플러스(Opulus)’ 서울 1호 회원 가입을 기념하며 이루어진 터였다. 게다가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중앙 일간지에 그의 나눔 일대기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기 좋게 깨졌다. 사무실 찾기가 까다로울 거라며 인근 지하철역까지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로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3만 원 넘는 옷은 입지 않으실 정도로 자신에겐 검소하신 분”이라며, 존경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 회사를 다녔고 수시로 외국을 오가며 좋은 거 입고, 좋은 거 먹으면서 남들처럼돈 불릴 궁리만 하며 살았어요, 저도. 그런데 기부를 하니 사람이 변하더라고요. 어려운 사람들 돕는다고 하면서 전처럼 잘 먹고 잘 쓰면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연 스럽게 겉치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어요.”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승승장구하던 김성주 기부자는 일찌감치 주식 투자 등으로 재산을 불렸다. 퇴직 후에는 무역 회사를 설립해 남부럽지 않은 자산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은 평생 이웃을 위해 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시작은 우연히 받은 전화 한 통이었다.

우연히 받은 전화 한 통

김성주 기부자는 퇴직 후 친구의 권유로 한 사회봉사 단체에 가입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으니 봉사도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선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사회복지 담당’이었다.
“2007년도였어요. 마침 봉사 단체 사무실에 있을 때 서울대어린이병원이라면서 전화가 왔어요. 미혼모 아이가 급하게 심장병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를 좀 후원해줄수 있느냐고요. 회원들끼리 십시일반 모으면 되겠다 싶었지만, 속도도 느리고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성주 기부자는 아이의 생명이 직결된 상황이라 고민하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아니면 도울 사람이 없다는 강한 직감에 결국 800만 원을 기부 했다. 김성주 기부자의 생애 첫 번째 기부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몇 년이 지난후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수술 성공 사례로 건강하게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 거잖아요. 그게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중학생으로 자란 모습까지 병원 소식란에서 봤는데, 그 아이에게 정말 고마 워요. 제 인생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완전히 바꿔놨으니까요.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전여전히 돈 불릴 궁리나 하면서 친구들이랑 골프 치러 다니고 있었겠죠.”

여동생의 안타까운 죽음

2007년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시작된 김성주 기부자의 나눔은 현재 40여 곳의 사회복지 기관에 매월 약 4,000만 원씩 기부하는 규모로 커졌다. 지난 16년간 기부한 돈만 40억 원이 넘는다.
“오래전부터 아너 소사이어티를 알고 있었어요. 지인 사무실에 가면 멋진 명패를 종종 봤거든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기부자라고 광고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제일 마지막에 하려고 미루어두었죠. 그러다 여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사랑의열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지난해 12월, 김성주 기부자는 서울 최초 아너 소사이어티 오플러스 회원으로 가입하며 사랑의열매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직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가슴 아린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2022년 여름, 독일어 강의와 번역 일을 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의 막내 여동생이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손쓸 틈도 없이 2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간 집에 여동생은 쓰러져 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의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했느냐 김성주 기부자를 나무랄 정도였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부해왔지만 정작 여동생은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지금도 괴롭기만 하다.
“황망하게 동생을 보내고 재산을 정리하는 데 예금 21억 원이 있는 거예요. 옷도 안 사고, 생전 화장 한 번 안 하고… 오래된 작은 국산차 하나 끌면서. 너무 검소해서 그저 저하나 건사하며 사는 줄 알았지 그렇게 거액을 남겼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여동생은 서울 강북 조그만 아파트에서 에어컨도 없이 살면서 돈을 아끼느라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다. 김성주 기부자는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만 있다면 나눔의 기회는 언제고 찾아옵니다.
다만, 그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인생 최고의 행복이 나를 찾아온 거니까요.
- 김성주 기부자
자신의 나눔 철학을 이야기하는 김성주 기부자. 뒤로 그가 후원하고 있는 국내 40여 곳의 사회복지 기관 자료들이 보인다.
말기 암 환자 쉼터 건립

김성주 기부자는 첫 기부의 순간처럼 여동생이 남긴 유산 역시 좋은 곳에 써야 함을 직감했다. 그는 남은 가족들과 상의해 1억 원은 여동생의 모교인 이화여대 독문과에 장학금으로 쾌척하고, 남은 20억 원은 말기 암 환자를 위한 무료 호스피스 부지 비용으로 순교복자수 녀회 마뗄암재단에 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동생 세례명 가브리엘라를 딴 무료 호스피스 ‘가브리엘라 천사의 집’을 건립하기 위해 김성주 기부자는 20억 원을 기부하며 사랑의열매 오플러스에 가입한 것이다.
“여동생이 너무 안쓰러워요. 그래서 내 전 재산을 내놔도 아깝지가 않아요. 지금이라도 살아 있으면 오빠가 신경 많이 못 써서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싶어요. 말기 암 무료 호스 피스를 지어놓으면 동생도 하늘에서 편히 오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스스로 아픈 마음을 위로해 봅니다.”
가브리엘라 천사의 집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김성주 기부자의 기부 중 가장큰 규모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며 시작한 나눔이 이제 누군가의 다한 생명을 마지막 까지 위로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디 그가 나눈 마음들이 돌고 돌아 다시 그에게 복되게 전해지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