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나당칼국수 곽재현 대표
창업 반세기,
시장님도 줄 서는
정통 로컬 맛집
맛집이라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다. 역사와 전통, 맛과 개성,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추억까지 헤아려보면 그렇다. 50여 년간 제대로 된 칼국수 한 그릇을 끓여내고 있는 곳, 세종시 맛나당칼국수다.
글 강은진 사진 서범세
맛나당칼국수를 찾아가던 길, 솔직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방송에 소개된 유명한 식당도 아니고,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이한 메뉴도 아니었다. 물론 가기 전, 검색 등 사전 조사를 했다. 맛있다는 리뷰도 많고, 단골도 꽤 되는 오래된 칼국숫집이긴 했다. 하지만 웬만한 노포에는 다 붙어 있다는 ‘백년가게’ 같은 인증마크 하나가 없었다. 그저 어느 동네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칼국수 식당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오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수타면이라고 요란하게 간판을 걸고 맛보다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집도 적지 않은데, 이곳은 식당 가장 안쪽에서 조용히 직접 면을 반죽해 만들면서도 가게 어느 한 군데 안내나 광고 문구가 없다. 단순히 손님으로 방문했다면 직접 만든 면인 줄 모를 뻔했다.
“아버지가 가게를 처음 시작하실 때부터 손수 면을 만들어오셔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지, 다른 생각은 못 해봤어요. 또 육수 끓이고, 겉절이 버무리고, 만두소 만들고… 이런 건 다 직접 하기 때문에 아침 7시부터 시작해도 하루가 짧아요.(웃음)”
맛나당칼국수 2대 사장 곽재현 대표는 오랫동안 직접 빚어오던 만두를 얼마 전부터 소만 만들고, 모양은 틀을 이용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시중 제품을 떼다 파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미안한 듯한 표정이었다. 칼국수 맛을 보기 전이었지만, 곽재현 사장의 태도에 맛나당칼국수에 대한 믿음은 최고조에 달했다. 멀리서 장인 찾을 일이 아니었다. 진짜 제대로 된 노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맛나당칼국수의 메뉴는 칼국수와 고기만두, 김치만두뿐이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종류별로 주문한 후 또 놀랐다. 고깃집이나 샤부샤부식당에서 쌈 채소 나오듯 큰 양푼에 싱싱한 쑥갓을 듬뿍 담아주는 것이 아닌가. 충청도 지역엔 쑥갓을 올리는 칼국수가 많다. 하지만 고명 수준이지, 이렇게 따로 한 줌이나 주는 집은 처음 봤다.
피날레는 칼국수였다. 빨간색 국물이 장칼국수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고추장 맛도 된장 맛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라면 국물 같은 인스턴트 맛은 더욱 아니었다. 매콤함으로 설명이 부족한 부드럽고 깊은 국물 맛, 정말이지 자꾸 생각날 것 같았다. 거기에 면과 어우러짐이 완벽했다. 두껍지 않은 면발은 그냥 그대로 즐기고 싶을 만큼 담백했다. 씹을수록 구수한 뒷맛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싱싱한 쑥갓을 쌈 싸듯 올려 먹으니 이 또한 완전히 다른 맛이다. 국물의 부드러운 매콤함과 면발의 고소함에 더해지는 쑥갓의 향긋함이라니!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면 소재지 동네 칼국숫집에 점심시간이면 시장님까지 줄 서는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방송이나 유튜브 같은 데서 연락도 많이 왔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뭐 내세울 게 있다고 방송이냐. 동네마다 유명한 집 하나씩 다 있는 게 칼국수인데. 칼국수가 비싸봐야 맛있어봐야 칼국수지’ 하시며(웃음)… 다 거절하시고, 유난 떨지 말고 음식 만들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거절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겼다며 웃는 곽재현 대표. 이런 거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이 칼국수를 끓이고, 만두를 찐다. 매일같이 오는 단골은 물론이요, 근처를 지나면 무조건 들르는 손님부터 명절 귀향길에 꼭 먹고 간다는 고향 사람들까지 저마다 맛나당칼국수에 대한 추억이 많아 이번 추석에도 차례만 지내고 가게 문을 열었을 정도다.
착한가게도 시작한 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갈 거예요.
오래돼 잘 기억도 안 나요.
그런데 앞으로 더 오래 해서
다음엔 100년 된 착한가게로 소개되고 싶네요!
맛나당칼국수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게 1975년이다. 올해로 48년째로, 거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다. 방송은 거절한 탓이라지만, 백년가게 인증은 충분한데 왜 없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거기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었다.
“그러잖아도 백년가게를 하자고 심사가 나왔는데, 그때 보니까 사업자가 식당이 아니라 여관으로 돼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신고하러 갔는데, ‘맛나당’이라는 상호를 무슨 ‘장’으로 들은 직원이 그냥 여관 같은 덴 줄 알고 그렇게 등록했던가 봐요.(웃음) 당시엔 워낙 시골이고 하니까 종종 그런 일이 있기도 했대요.”
5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맛나당칼국수지만, 사업자등록증 기준 28년밖에 되지 않는 식당인 그야말로 ‘웃픈’ 연유였다. 시간이 지나 맛나당칼국수에 백년가게 인증 마크가 붙는다면 그것은 ‘100년을 갈’ 가게가 아닌 ‘100년이 된’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쑥갓도 그렇다. 충청도 지역은 쑥갓을 고명으로 올리는 칼국숫집이 많다. 그중에는 유명 프랜차이즈도 있다. 그래서 다른 집들을 따라 한다고 오해도 종종 사지만, 맛나당칼국수가 쑥갓을 낸 지는 20년이 넘었다. 마트를 하는 지인이 주문을 잘못했다며 쑥갓 10박스를 그냥 준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물량을 다 감당하지 못해 전문 농장과 계약해 공급받고 있다. 쑥갓이 많이 나지 않는 한여름엔 부추로 대체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쑥갓 언제부터 제공하느냐는 손님 전화가 꽤 와요. 어떤 손님은 쑥갓만 몇 그릇 드시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손님은 이 집은 면발이 진짜라며, 쑥갓은 손도 안 대시고 칼국수만 드시기도 하세요.”
맛나당칼국수의 면은 다양한 재료를 배합한 반죽으로 만든다. 빨간 육수와 더불어 맛나당칼국수의 비법인 셈이다. 아버지 뒤를 잇고 있는 곽재현 대표에게 최고의 찬사는 “아버지 말고 이제 너 혼자 해도 되겠다”는 단골들의 말이라고 한다. 비록 면사무소 직원은 여관으로 착각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상호다. “아, 맛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