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나의 리듬이 보이시나요?”

양서연 작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그때그때 꽂히는 대상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주제는 단 하나,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노래뿐이다.

강은진 사진 이승재

숨길 수 없었던 예술 재능

다섯 살 무렵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양서연 작가. 몸도 허약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야 겨우 연필을 손에 쥘 힘이 생겼다. 그때부터였다. 연습장이고 공책이고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양서연 작가의 어머니 이숙희 씨는 딸이 화가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하고, 그저 낙서로 치부해 습작들이 쌓이면 버리곤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양서연 작가가 미술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관계자로부터 “그걸 버리면 어떡하나”라는 야단 아닌 야단을 맞고서야 딸의 재능을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양서연 작가는 옆에서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다.
<사랑의열매> 11월호 표지로 선정된 ‘감천문화마을 풍경’을 그린 양서연 작가는 2016년 고등학교 재학 중 일반인 대상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특선을 시작으로 대한민국회화대전, 국제장애인미술대전 등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번 표지는 대회에서 한창 상을 받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선 크고 작은 집들이 조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양서연 작가는 “많은 집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웃음과 눈물, 한숨 등 사람들의 감정이 마치 노래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양서연 작가의 작품에는 무엇을 그리든 그만의 리듬이 느껴졌다.

큰 용기 준 표지 선정

양서연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인물과 풍경, 그리고 풍경에 음표들이 더해지는 비구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양서연 작가는 미술 활동뿐 아니라 명지대학교 콘서바토리 과정에서 플루트를 전공하는 학생이면서 양주 ‘드림.투 앙상블’의 플루티스트로서 연주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딸이 미술보다 음악에 더 재능이 있다고 믿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양서연 작가 자신은 악보를 읽고 플루트를 연주할 때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때나 별다를 게 없다는 표정이다. 마치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그만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찾는 일은 그림이든 음악이든 다를 게 없다는 듯.
그러나 작가의 어머니는 작품 속 음표를 마음 아파했다.
사실 양서연 작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갑자기 찾아온 뇌전증으로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늘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불쑥 찾아온 뇌전증은 악보 외우는 일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작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멜로디를 그림에 더 투영시켰다. 단순히 음표를 그려 넣는 것을 넘어 리듬감이 살아 있는 추상 작품으로 깊이가 더해졌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엄마 마음이란 또 다른 것. 전처럼 악보를 외우지 못하게 된 딸의 건강이 염려될 뿐이다.
“얼마 전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대외 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사랑의열매> 표지 작가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되었죠.”
양서연 작가는 정말 큰 용기를 얻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 붓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완성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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