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채우는 세상

“장기 기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눔입니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또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얻어 다시 살게 된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사람을 살리는 노래, 생명의소리합창단이다.

강은진 사진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사람을 살리는 하모니

“꼭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이 말은 기증자 유가족이 수혜자에게 하는 가장 간절한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현재 법적으로 장기 기증자 유가족과 직접 이식을 받은 수혜자가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생명의소리합창단 활동을 통해 수혜자나 그 가족을 만나게 될 때면 유가족은 하나같이 “꼭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수혜자들은 이미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공식 창단된 생명의소리합창단은 비영리 재단법인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가 운영하는 상설 합창단이다.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기증자의 유가족과 장기를 이식받은 수혜자 및 장기 기증 희망 서약자로 구성된 세상에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합창단이기도 하다.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는 (재)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는 생명나눔을 실천한 장기 및 인체 조직 기증자의 예우와 함께 그 가족을 돕고, 올바른 장기 기증 문화를 형성해 장기 기증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CJ나눔재단과 사랑의열매가 지원해오고 있는데, 올해로 5년 차를 맞는 ‘기증자 유가족 심리 치료 지원 사업’이다.
CJ나눔재단과 사랑의열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생명의소리합창단은 매년 정기 공연과 함께 정부 기관이나 병원 및 기타 장기 기증 관련 기관의 각종 행사 초청 공연 등을 통해 장기 기증 문화가 형성되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장기 기증 홍보 사절단’이다.

병원에서 공연 중인 생명의소리합창단.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해 매년 1회 정기 공연과 함께 정부 기관이나 병원 등 기타 장기 기증 관련 기관의 각종 행사 초청 공연 등을 한다.
장기 기증 급감, 홍보 지원 절실

2000년 장기 기증법 시행 이후 장기 및 조직 기증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수년 전 일부 언론 보도와 장기 기증에 대한 부정적 댓글 등의 영향으로 급감한 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 및 조직 기증의 부족으로 이식받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장기 이식 대기자뿐 아니라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장기 기증의 소중함을 알리는 적극적 홍보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장기 기증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증을 경험한 가족들의 만족도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장기 기증 유가족은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과 상실감으로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것조차 꺼릴 뿐 아니라, 자책과 우울감 등으로 대부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유가족 스스로 이겨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외부의 도움을 통해 치유 과정을 거쳐야만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만 주변의 친척과 친구 및 직장 동료에게 장기 기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생명의소리합창단 활동이 유가족의 심리 회복을 넘어 장기 기증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하는 이유다.

2019년 경주에서 개최된 대한이식학회 학술 대회 초청 공연 모습. 참석한 많은 외국인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장기 기증 인식 개선에 큰 역할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다,” “속을 아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앉으나 서나 아이 생각을 지울 수 없고, 사는 게 죄스러웠다.” 유가족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마음을 위로하는 (재)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생명나눔 사랑나눔방에서 오간 말들이다. CJ나눔재단과 사랑의열매가 지원하는 ‘기증자 유가족 심리 치료 지원 사업’은 생명의소리합창단과 함께 기증자 유가족 대상 전문 심리 치료 프로그램, 대국민 홍보 및 유가족 네트워킹, 유가족 사랑나눔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기 기증 관련 주제곡을 매년 한 곡씩 새로 제작해 정기 공연 때 발표하고 있는데, 벌써 여섯 곡에 달한다. 특히 장기 기증자 사연을 담은 가사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중 ‘아름다운 동행’은 장기 기증자와 이식 수혜자가 서로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행한다는 내용으로, 영어로도 번역돼 외국인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합창하곤 한다. 2019년 11월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대한이식학회 학술 대회(Asian Transplantation Week) 초청 공연에서 많은 외국인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기증자 유가족 심리 치료 지원 사업은 기증자 유가족이 우울증과 자책감에서 벗어나 생명나눔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복귀를 유도하므로 유가족의 2차 사고도 미연에 방지하고,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등 취약 계층 이웃들에게 합창단 정기 공연 음원 CD도 배부해 합창을 듣게 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명의소리합창단은 오늘도 노래한다. 장기 기증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눔으로 인식하는 그날까지 생명의 하모니는 계속될 것이다.

합창 연습실 풍경
SPECIAL INTERVIEW

“장기 기증 활성화, 기증자 유가족의 긍정적 태도가 관건”

특별히 합창단 활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이 뭐가 좋다고 노래를 하느냐는 날 선 말을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기증자 유가족은 치유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우리 합창단 유가족도 처음 들어오면 연습 때 그냥 울기만 하신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그 마음을 아니까 따라서 같이 우신다. 이렇게 동병상련으로 같이 울고 같이 노래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지내다 보면 표정도 훨씬 밝아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확인할 수 있다. 노래가 지닌 치유와 회복의 힘이다. 합창단 새 단원들 대부분이 기존 유가족 단원들의 권유로 들어오는 것만 봐도 합창단 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합창단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합창단원 중 기증자 유가족분들이 전국 중고교 학생 대상 생명나눔 강연자로 많이 참여하신다. 특히 이분들은 가족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 등을 강조하는데, 강연을 진행한 학교로부터 자살 예방 효과까지 나타난다는 후기를 자주 전달받는다. 그때마다 유가족들의 활발한 대외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이 궁금하다.
2018년 9월 정부의 생명나눔주간 선포식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그때 행사에 참석했던 레그 그린 씨가 공연 후 따로 찾아와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해준 것이다. 레그 그린 씨는 가족들과 이탈리아 여행 중 아들 니콜라스가 사고로 사망하자 현지에서 장기를 기증해 세계적으로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한 분이다. 이후 장기 기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니콜라스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CJ나눔재단과 사랑의열매 지원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장기 기증과 관련한 주제의 동영상을 제작해 방영하는 등 정기 공연 프로그램이 더 다양해졌다. 그뿐 아니라 기타 합창단 연습이나 그 외 초청 공연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이웃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2022년 말 기준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 수는 4만 1,000명이 넘는 데 반해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405명인 상황이다. 또 기증만 받으면 살 수 있지만 기증을 받지 못해 죽음을 맞는 환자는 하루 평균 7명 정도 된다. 장기 기증은 누군가의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보다 많은 사람이 생명나눔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