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마디

운명처럼 시작한 나눔, 농업회사법인 (주)제우스 김한상 대표 “제가 경험한 나눔의 기쁨,
더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달변가였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질문엔 좀처럼 답하지 못했다. 마치 왜 밤에 잠을 자나요, 같은 당연한 질문을 받고 당황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나눔의 길,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될 일이었다. 그의 이야길 듣고 있자니 말이다. 참 좋은 사람 김한상 대표다.

강은진 사진 김기남

그럴 줄 알았던 사람

‘좋은 사람’이란 말이 있다. 아마도 김한상 대표를 두고 있는 말 같다. 김한상 대표의 첫인상도, 이야기를 나눈 후 기억도 바로 좋은 사람이라는 네 글자였기 때문이다. 아니, 다섯 글자 되시겠다. 참.좋.은.사.람.
“아너 가입을 권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고 답했죠. 기부 약정서에 사인하면서 정말 기뻤던 기억만 나요. 주변 반응요? 다들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김한상 대표는 지난해 6월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 제주도 109호 회원이 되었다. 기부 결정부터 기부 후 주변 반응까지 싱겁기 그지없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마치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답했다던 것처럼 말이다. 당연한 질문에 답을 하려니 곤혹스러웠을 김 대표에게 1억 원이라는 거액의 기부 계기를 물으니 비로소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느 날, 김 대표가 신임하던 직원 한 명이 그를 찾아와 어렵게 말을 꺼내더란다. 조금 아픈 자신의 아이가 안전하게 다닐 만한 특수 어린이집을 알아봐주실 수 있느냐는 청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 대표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1년 전 첫아이를 낳고 마냥 행복하게만 지내는 줄 알았던 직원이었다. 대표로서 직원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어린이집을 찾아 나선 게 김 대표의 운명 같은 나눔의 시작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그길로 제주도 전체를 뒤지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좋다는 곳을 직접 가봤는데, 장애 시설은 다 좋은 줄 알았는데 너무 열악한 거예요. 그런 곳에 차마 우리 지우(가명)를… 보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제가 몰랐던 복지의 사각지대를 목격한 거예요.”
담담하기만 하던 김 대표는 직원 아이를 “우리 지우”라 부르며 목이 메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는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물었고, 그렇게 사랑의열매와 인연을 맺으며 아너 가입까지 하게 됐다.
“그땐 그게 좋은 일인지 뭔지 몰랐어요. 우리 직원들 가정까지 내가 돌봐야겠다, 그리고 우리 지우가 커서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 딱 두 가지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장애인을 대거 고용해 지금은 장애인 기업으로 등록됐을 정도예요. 이렇게 해야 우리 지우가 나중에 입사할 수 있잖아요.”
거액의 기부부터 지우의 입사까지, 시종일관 당연한 일처럼 말하는 김 대표에게 “대단하다”는 찬사가 때 묻은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같은 김 대표의 뜨거운 선행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주도 내 첫 마스크 생산이 대표적인 예다.

선행이니 기부니, 사회 공헌이니 하는 말들은 저와 상관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운명처럼 느껴요. 제가 경험한 이 나눔의 기쁨을 더 많은 분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행복하거든요.

내게는 당연한 일들, 계속해나갈 것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마스크 대란에 빠졌을 때,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마스크 생산에 돌입해 제주도 방역 체계 구축에 일조함은 물론, 저소득층을 위해 기부까지 했다. 농업 회사에서 웬 마스크 생산인가 싶지만, 타이벡 농법 자재가 바로 마스크 원단 재료였던 것. 당시 시세가 평소보다 1,000배 넘게 폭등했지만, 김 대표는 질병관리청에 먼저 연락해 원단을 평소 가격에 제공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야기다.
“모르는 사람은 마스크 만들어 돈 많이 벌었겠다고 해요.(웃음) 그러게요, 말을 하다 보니 이게 사회 공헌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전 한 번도 선행이니 사회 공헌이니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들 길에 돈이 떨어져 있으면 주인 찾아주잖아요?”
모두에게 좋은 일이 김 대표에겐 그저 당연한 일이 된다. 김한상 대표가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주)제우스는 제주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망 스마트 팜 기업 중 하나다. 농자재 유통부터 제주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 산업 및 당도와 크기까지 취향대로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감귤 쇼핑몰 달다린(www.daldarin.com)까지 오픈하며 첨단 농업을 선도하고 있다. 건설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감귤 타이벡 농법에 매료돼 창업하게 됐는데, 처음엔 돈이 없어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 한편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해 오늘의 제우스를 일궜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농민의 어려움을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곧 제우스의 발전”이라 말하는 사람이 김한상 대표다. 그의 당연한 일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지, 기분 좋은 기다림이다.